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량 해전 (문단 편집) === 울돌목의 좁은 지형과 물살 === 사실 이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른 무엇도 아닌 지형에 있다. [[울돌목]]은 폭이 약 300 m 정도로 매우 좁아서 이순신 휘하의 십수척의 [[판옥선]]으로도 일자진을 펼치면 완전히 틀어막는 게 가능할 정도다. 이런 식으로 틀어막아서 병력 수의 불리함을 가능한 줄이고 들어오는 왜선을 오는 족족 박살내자는 게 기본 전략이었다. 유사한 예시로 좁은 협곡에서 300명의 병사로 페르시아 대군을 막아낸 [[테르모필레 전투]]가 있다. 물론 이 지역의 [[조류]]는 매우 빠르기 때문에 기존의 판옥선의 선회 능력을 사용해서 한번 쏘고 반대면에서 한번 더 쏘는 식으로 포의 발포 시간을 최대한 줄여서 강한 화망을 형성하는 전략은 쉽지 않았으며, 휘하 장수들이 뒤로 물러나서 왜선이 좁은 울돌목을 돌파해버리면 가뜩이나 조류의 흐름이 불리한 상황에서 함대의 진형을 회복할 수 없고 그대로 각개격파당해서 무너지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순신은 이 점을 잘 알고 근접전의 위험을 감수하고 제자리에서 왜선을 맞아서 싸운 듯하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는 휘하 장수들의 행동을 막지는 못했고, 간신히 초요기를 세워서 불러들이는 식으로 휘하 전선들을 불러와 제자리에서 진형을 유지하게 해서 반격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조류가 바뀌면서, 조선 수군의 공세로 인해 과하게 밀집되어있던 왜선들이 밀려나게 된다. 결국 명량 대첩의 기적을 일으킨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일본군의 방심이나 혼란도 아니고 기적도 아닌 지형적인 이점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진형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면서 유리한 때를 기다린 이순신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